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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복 유묵
시대 : 현대
크기 : 63.2×23.5(cm)
김말복(金末福, 1909 ~ 1985) 스님이 살아 생전에 쓰신 ‘萬福雲興(만복운흥:온갖 복이 구름처럼 일어나다)’ 글씨이다.
김말복은 하북면 순지리 6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통도사로 출가하여 통도사 지방학림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항일 의식을 키워나갔다.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 불교전수학교를 거쳐 1936년 도쿄에 있는 명문 고마자와(駒澤)대학 불교과에서 수학하고 1939년 3월 졸업하였다. 1939년 4월 통도중학교 교사로 임명되어 불교학, 국한문, 국어, 동양사 과목을 가르쳤다.
당시 교사로 근무하던 조병구가 1919년 고종 장례식 때 망국의 한을 읊은 만장시를 동료들에게 알려주었고, 한문교사인 김말복이 이를 국한문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순천 선암사에서 유학왔던 이승권이 만장시를 공책에 적어 그 뜻을 새기다가 일본 경찰의 검문에 발각되었고, 이 사건으로 1942년 5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12월 14일 출옥하였다.
해방 후 통도사 주지(1954~1957)로 임명되어 수도승의 훈육과 종무(宗務)에 전력하였으며, 이후 교육 보국의 이념을 가지고 다시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1964년 3월 보광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정년 퇴임까지 10여 년간 후진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1985년 5월 하북면 순지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묘소는 하북면 답곡리 솥발산공원묘원(하북면 삼덕로 솥발산공원)에 자리하고 있으며, 추모비도 함께 세워져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198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크기 : 63.2×23.5(cm)
김말복(金末福, 1909 ~ 1985) 스님이 살아 생전에 쓰신 ‘萬福雲興(만복운흥:온갖 복이 구름처럼 일어나다)’ 글씨이다.
김말복은 하북면 순지리 6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통도사로 출가하여 통도사 지방학림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항일 의식을 키워나갔다.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 불교전수학교를 거쳐 1936년 도쿄에 있는 명문 고마자와(駒澤)대학 불교과에서 수학하고 1939년 3월 졸업하였다. 1939년 4월 통도중학교 교사로 임명되어 불교학, 국한문, 국어, 동양사 과목을 가르쳤다.
당시 교사로 근무하던 조병구가 1919년 고종 장례식 때 망국의 한을 읊은 만장시를 동료들에게 알려주었고, 한문교사인 김말복이 이를 국한문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순천 선암사에서 유학왔던 이승권이 만장시를 공책에 적어 그 뜻을 새기다가 일본 경찰의 검문에 발각되었고, 이 사건으로 1942년 5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12월 14일 출옥하였다.
해방 후 통도사 주지(1954~1957)로 임명되어 수도승의 훈육과 종무(宗務)에 전력하였으며, 이후 교육 보국의 이념을 가지고 다시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1964년 3월 보광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정년 퇴임까지 10여 년간 후진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1985년 5월 하북면 순지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묘소는 하북면 답곡리 솥발산공원묘원(하북면 삼덕로 솥발산공원)에 자리하고 있으며, 추모비도 함께 세워져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198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